말씀만 들어도 오랫동안 가정을 책임져 오신 입장에서, 이혼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재산분할과 부양비 이야기까지 한꺼번에 듣게 되니 많이 허탈하고 답답하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는 한인 남성분들이 정말 많아서, 이 걱정이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재산 문제부터 말씀드리면, 캘리포니아는 기본적으로 결혼 생활 동안 형성된 재산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보고, 원칙적으로 반씩 나누는 구조입니다. 남편 명의로 된 집이든, 월급으로 모은 저축이든, 결혼 후에 함께 살아오면서 쌓인 부분이라면 공동재산으로 보는 것이 법의 출발점입니다. 아내가 밖에서 직접 돈을 벌지 않았더라도, 그 기간 동안 집과 아이를 책임지고 남편이 밖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을 경제적 기여로 보기 때문에, 전업주부라고 해서 재산분할에서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것이 “당신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결혼 전에 모아 둔 재산이나 상속, 증여처럼 예외가 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재산이 얼마나 공동재산에 해당하는지는 따로 계산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 숫자를 놓고 따져 보면, 막연히 상상하셨던 것과는 조금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배우자부양비는 재산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결혼 기간이 20년이 넘고 아내가 전업주부였다면, 이혼 직후에는 어느 정도 기간 동안 남편이 부양비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입니다. 다만 “평생 자동 확정”은 아닙니다. 아내가 일을 시작해서 소득이 생기거나, 반대로 남편이 은퇴를 해서 수입이 줄어드는 등 사정이 달라지면, 나중에 부양비를 줄이거나 없애 달라고 법원에 다시 요청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20년 넘는 혼인과 전업주부 배우자가 있는 경우라면, 결혼 기간 동안 쌓인 재산을 함께 나누고, 일정 기간 배우자부양비를 부담해야 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생 다 뺏기고 평생 먹여 살려야 한다”는 식으로만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준비는, 현재 재산과 부채, 소득과 지출, 은퇴계좌 상황을 한 번 정리해 보고, 그 자료를 가지고 예상 재산분할과 부양비 수준을 숫자로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그림을 먼저 가져오시면, 감정적인 억울함에서 조금 벗어나서, 내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훨씬 차분하게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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