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대략적인 기능 설명은 이 정도 하고, 오늘 질문의 핵심인 CMR과 CPI 수치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씀 드려야 하겠죠? 근데 참 유감스럽게도 480 CMR 제품과 600 CPI 제품 중에 어느 쪽이 더 화질이 좋을지에 대해선 제가 판단 내리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는 같은 기준으로 나온 수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각 TV 제조사들의 꼼수(?)도 약간 들어있거든요.
최근 TV에 탑재된 움직임 보정 기능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120Hz 주사율(refresh rate)의 패널을 탑재한 TV가 시장에 본격 공급되기 시작한 2007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사율이란 1초당 몇 프레임의 화면이 화면에 전환되는가를 의미합니다. 당연히 주사율이 높으면 한층 잔상이 적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화면을 구현할 수 있지요(물론 여기엔 화상 엔진에 의한 보정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기존의 TV는 대부분 60Hz 화면 주사율로 구동되었거든요. 물론 2015년 현재 팔리는 TV 중에서도 보급형은 거의 60Hz이긴 합니다.
아무튼 이때를 즈음해 각 TV 제조사에서 이렇게 화면 움직임을 부드럽게 보정하는 기술을 강조하며 경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움직임을 부드럽게 하고 잔상을 제거하는 방법은 주사율을 높이는 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화면을 보정하는 화상 엔진의 성능을 높이거나 백라이트의 개선, 혹은 소프트웨어적인 처리로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거든요. 이는 주사율을 높이는 것에 비하면 보정 효과가 다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만, 생산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선 괜찮죠. 다만, 이런 각 사의 보정기술을 구체적인 수치로 가늠할 수 있는 공식적인 단위가 없었기 때문에 명확한 수치를 제시할 수 있는 화면 주사율에 비하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CMR, CPI는 화면 주사율을 '뻥튀기' 하기 위해 생긴 개념?
이 때문에 2010년 전후부터 TV 제조사들은 120Hz, 240Hz와 같은 화면 주사율을 강조하기 보다는 자사에서 직접 제창한 독자적인 기준의 화면 보정 수치를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자님이 궁금해하셨던 삼성의 CMR(Clear Motion Rate)나 LG의 CPI(Comparable Picture Index)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삼성 CMR
이를테면 삼성 UN55H6400AF 모델의 영상 부분 사양표에는 'CMR 480Hz'라고 써 있습니다. 이게 언뜻 보면 480Hz 주사율의 패널을 탑재한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 모델에 탑재된 화면 패널의 실제 주사율은 120Hz 입니다. 여기에 "삼성의 화면 움직임 보정 기술을 적용해 실제 패널 사양의 4배에 달하는 480Hz 주사율에 상응하는 화면을 볼 수 있다" 는 것이 삼성전자의 주장인 것이죠. 때문에 CMR 기준은 삼성 TV에만 유효합니다.
LG전자 TV의 사양표에 표기되는 CPI는 이보다도 한 술 더 나아간 개념입니다. 이건 "화면 주사율과 화면 움직임 보정 기능 외에도 그래픽 프로세서의 처리능력에 응답속도, 색감 등까지 모두 고려해서 지정된 화질 등급"이라고 LG전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LG전자에선 CPI의 상위 개념이자 UHD TV 전용의 화질 등급 기준이라는 UCI (Ultra Clarity Index)라는 새로운 기준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역시 당연히 LG TV에만 적용되는 기준이죠.
다른 제조사 TV끼리 비교할 때 CMR, CPI 수치는 변별력 없어
이 때문에 480 CMR의 삼성 TV와 600 CPI의 LG TV 중에 어느 쪽이 더 화질이 더 나을지에 대해서 당연히 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CMR이나 CPI는 업계 전체에 공인된 기준이 아니라 특정 업체에서 자사 제품의 성능 강조를 위해 만든 독자적 화질 등급이기 때문이죠. 당연히 다른 제조사의 TV끼리 비교할 때는 CMR이나 CPI는 전혀 변별력이 없습니다.
때문에 CMR이나 CPI 같은 특정 제조사의 독자적인 등급 기준은 오히려 소비자들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비판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같은 제조사의 TV끼리 성능 비교를 하고자 한다면 이런 수치를 참고하는 것도 나름 도움이 되긴 합니다. CMR이나 CPI 같은 수치가 과연 소비자들의 현명한 제품 선택을 돕는 기준인지, 아니면 단순히 제조사들의 마케팅 전략에 불과한지에 대해서는 이 기사를 읽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서로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유사 제품끼리 비교할 때 제품의 성능을 짐작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가격'이긴 합니다. 특히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경우는 정말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두 업체의 제품이 가격이 비슷하다면 성능도 거의 동급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겠네요. 이것이 오히려 CMR이나 CPI 보다 더 도움을 주는 제품 선택의 기준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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