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0년째 표류하고 있습니다
지역California
아이디(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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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7/25/2010 10:31:21 PM
대대로 미국병 들린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할아버지때 부터 미국만 가면 다 성공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듯 합니다. 심지어는 미국가면 구멍가게만 해도 잘 먹고 사는데 뭐하러 대학 가냐며 자녀들 대학 입학에도 별 신경을 안 쓰는 집안이였습니다. 그런 덕분에 저 어릴적부터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들 모두 미국에 와서 구멍가게를 했습니다. 저는 20대 후반까지 한국서 집안 일을 도우며 어영부영 지내다 서른 다 되서 그렇게 어르신들이 목을 메던 미국에 왔습니다.
식구들은 모두 넉넉한 크기의 집에 멀세이디 벤츠를 타며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다만 식구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구멍가게들은 기대보다 영세했습니다. 빈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구역에 위치한 가게. 그리 밝지 않은 형광등 아래서 25센트짜리 사탕과 말보로 담배를 하루 17시간동안 팔아야 하는 그런 구조. 실망을 했지만 내색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들은 자신의 성공한(? ) 삶에 절대 부서지지 않을 긍지 같은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갓 미국에 온 쥐뿔도 모르는 제가 감히 무슨 토를 달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였습니다. 전 긍정적인 쪽으로 가닥을 잡기로 했습니다. 제 인생의 대부분을 그런 토끼굴 구멍가게에 밀어 넣어도 좋은 집과 차가 제 상실감의 상당부분을 상쇄 해 줄꺼라 계산도 했습니다. 그렇게 미국 생활이 시작 됐습니다.
처음 6개월은 랭귀지스쿨을 다녔습니다. 유학비자였으니까요. 학교를 다니며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미국엔 내가 생각치 못했던 삶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들은 나와 다른 꿈을 꾸고 다른 길을 지향했습니다. 가족들은 겉멋이라 정의했지만 그때 저는 뭔가 다른걸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학비를 융자 해 줄수 없겠냐는 제 소심한 중얼거림은 식구들의 귀에까지 닿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6개월 랭귀지 스쿨 학비가 유일한 경제적 원조였던 전 후에 작은 아버지네 가게를 돌며 시간당 $7에 사탕과 말보로와 버드와이저를 팔았습니다.
5년을 지냈습니다. 시급은 $ 8.50 이 됐습니다. 한달 $1400 쯤의 수입에 아파트비와 식비를 제하고 저축 할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작은 아버지들과 한국에 식구들까지 '참고 있다 보면 기회가 온다'라고들 말했지만 내 가게를 차릴 돈으론 터무니 없는 적은 액수만 제 통장에 있었습니다. 10년은 더 일해야 아마 조그만 구멍가게의 다운페이가 가능 할 액수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혼자 사는 아파트가 사치인가도 싶었습니다. 동네 멕시칸 친구들과 8명이 $100씩 내는 아파트에 몸만 들어가 살아야 하나 갈등도 했습니다. 돈 불리는 재주가 없는 저로서는 은행에 약간 있는 돈으로 뭘 해볼려는 아이디어도 용기도 없이 그저 10년을 더 일해야 할 판이였습니다.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식구들의 생각은 모두 시간이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였지만 그 결과를 고스란히 안아야 될 저는 그리 안일하게만 생각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들은 어떻게 돈을 모아 장사를 하게 되었나 한국집에 물었더니 약간의 유산이 부빌 언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대 할수 없는 부분이였습니다. 그러다 작은 아버지 가게에서 일 하는 중에 권총 강도가 들었습니다. 그리 아무 의미 없게 죽음에 고비를 넘긴 제게 경찰이 간 다음 다시 가게문을 열라는 태연한 작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 길이 제 길은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단돈 몇십불에 총을 들이대는 저 사람들을 내 인생에 가득 채워야 한다면 좋은 집과 차가 무슨 의미겠습니까. 전 부모로써 희생해가며 키워야 할 아이들도 없는데 말입니다. 바로 다음 달 갖은 욕을 먹어가며 집안 어르신들의 가게에서 손을 뗐습니다. 사람이 없으니 좀 더 도와달란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가 인연을 끊자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서운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이고 작은 아버지 입장으론 맨몸으로 미국 온 조카에게 그간 최선을 다 하신거라 생각했습니다.
경력이라곤 구멍가게 5년이 전부인 전 사무용품점 클락으로 겨우 취직했습니다. 별 다른 기술 없이 손님 받고 물건 파는 일이여서 일은 쉬웠지만 역시 일주일 벌어 일주일 사는 일이라 맘은 편치 않습니다. 그게 또 4년입니다.
지금까지 우유부단하고 학력이나 경력도 돈 불리는 재주도 하나 없이 미국에서 10년째 표류하는 한 멍청한 사람에 이야길 들으셨습니다. 제 나이가 이제 마흔입니다. 이대로 살다간 제 나이 쉰이 되도 달라지는게 없을거란걸 생각하면 밥도 안 넘어 갑니다. 불행히도 저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식구들은 아직 토끼굴에 계셔서 그리 넓은 시야로 제 길을 보여 주실수 없으십니다. (그 분들을 낮게 보거나 희화화 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성격이 소심해서 이런 이야길 누구와 나누어 본 적도 많지 않습니다. 나이 마흔에 어떤 길이 있겠습니까? 능력이 없으니 이대로 하루하루 살다가 월페어를 타는게 수순이라면 제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10년을 허비한게 한심하다 욕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게으른건지 시야가 좁아 다른길을 모르는건지 냉정하게 보셔서 모진 충고를 주십시요. 구체적으로 지금 일하고 계신 필드쪽에 제가 공부해서 엔트리 기술직으로라도 비집고 들어갈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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